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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총구역장 서경숙 골롬바
 
작성일 : 15-07-27 01:26
2014년 사목 총회 3
 글쓴이 : 루시 세례명:[루시아]
조회 : 3,126  

--- 체험 발표 ----

< 반기도 모임 활동에 대하여 홍진희 아델라입니다.>

    저는 올해 4월에 이사를 했습니다. 이사를 온 곳은 반장이 없어서 1년 가까이 반기도모임을 하지 않은 곳이었습니다. 구역장님의 권유로 반장을 하게 되었고, 구역장님께 반적부를 받고 난 후 일주일에 한, 두 번 하나하나 이름을 부르며 묵주기도를 하기도 하고, 간단히 주모경을 하기도 했습니다. 처음엔 두 세명이 반기도모임을 하곤 했습니다.

어느날 79세 두분을 모시고 한 적이 있는데 할머님께서 답답한 현실이라며 말귀도 못 알아 듣는 늙은이 둘을 앉혀놓고 무슨 반모임을 하냐며 너털웃음을 지으셨습니다. 저는 두 명이상 모인곳에 주님께서 함께 계신다고 했는데 무슨 말씀이세요. 저는 두 분과 함께 할 수 있음이 감사하고 행복해요라고 말씀드렸더니 두 분께서도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다고 하시더군요. 그러던 어느날 8월에 40대 초반의 자매님이 전입 오셨고, 9월에 30대 초반의 자매님이 전입을 오셨습니다. 전입 교우댁에 방문을 하고 이런저런 얘기와 반모임에 나오기를 권유했더니 두 분다 한번도 반기도모임을 해 본적은 없지만 나오겠다고 하셨고, 9월부터 정말 나오고 있습니다. 한 분은 3살의 예쁜 딸을 데리구요.

앞으로도 계속 나오고 싶은 곳이라고 좋아하셨습니다. 반기도모임이 끝난 후엔 돌아가면서 자유기도를 하는데 그날은 할머니께서 기도를 하려는데 갑자기 제 입에서간절히 기도해 보세요.”라는 말이 하고 나왔습니다. 그래서인지 할머니께선 기도를 하시다가 떨리는 목소리로 눈물을 흘리시며 할아버지께서 아파서 누워계시는데 일어날 수 있게 해주세요.”라고 하시는 겁니다. 순간 반모임을 하는 5명 모두가 한 마음으로 모아지며 숙연한 느낌과 잠시 침묵이 흘렀습니다. 그런데 다음 반모임에 할머니께서 기쁜소식을 전해 주셨습니다. 지난번 반기도모임 끝나고 점심드리려고 집에 갔더니 거동이 불편해 누워계시던 할아버지께서 조금씩 움직이며 일어나시더니 통증이 많이 없어졌네하시며 일어나 걸으시더랍니다. 병원가서 엑스레이를 찍어 보았지만 협착증은 변한게 없다고 하는데 참 신기한 일이었답니다.

함께 간절히 기도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되어 저희 모두 기뻤습니다. 이렇게 저희 반은 새 식구도 늘어나고 기쁘고 즐겁게 반모임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간절히 기도해 보세요라고 말한 것은 주님께서 저의 입을 통해 주님의 뜻을 말해 주셨나봅니다. 장으로 뽑아 주신 주님께 감사드리며 찬미와 영광드립니다.


<본당의 날에 대하여 윤명희 카타리나입니다.>

저는 24 딸아이와 11살 남자아이를 둔 가정주부입니다. 물론 남편도 한분 계십니다. 학창시절엔 개신교였는데 지금의 남편과 만남을 시작하면서 성당엘 다니게 되었습니다. 성당엘 가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일을 두고 웃고, 서로 사랑하는 모습을 보면서 어린시절 받았던 상처를 치유받는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주부가 되어 타본당에서 주일교사를 하였고명일동 성당으로 와서는 반장, 구역장과 성서공부를 계속 하면서 신앙생활을 키워 나갔습니다. 타 본당에 없는 본당의날 행사를 참여하게 되었는데 좋았던 점은 진행과정에 필요한 물품과 다른 단체와의 만남을 위한 준비를 도운적이 있는데 매일 만나면서 서로 가까워지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 모르는 분들과 한마음을 이룰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전 그때 하루 종일 순대를 삶아서 올리는 작업을 했는데, 할 때는 냄새와 열기 때문에 힘들었지만 많은 먹거리와 알뜰장터에서 즐거워하는 신자들을 보면서 주님, 감사합니다.’를 마음속으로 외치게 되었습니다. 단체별로 장기자랑을 하며 모두들 열심히 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저의 늦동이가 지금은 초등학교 4학년이지만, 초등학교 2학년 본당의날 행사때 음악에 맞추어 요요장기자랑을 한적이 있습니다. 지금도 그때 이야기를 하면서 웃음 꽃을 피운답니다. 행사를 하면서 조금 아쉬웠던점은 사람들의 이기적인 행동, 무질서한 행동을 보면서 반성할 점이 많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단체별 장기자랑을 할때는 단체의 특성에 맞는 공연 순서를 배치했으면 했습니다. 예를들어 초등부는 아이들을 통솔하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부모님들도 신경을 써야하는데 일요일 날 공연이 잡힌 적이 많아 불편했었습니다. 단체별로, 개인별로 본당의 날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이 있다하더라도 우리 본당만의 색깔을 가진 본당의 날 행사는 본당에 대해 홍보도 되고 신자들과의 유대관계를 형성해 주어 즐거웠습니다.

                  <쉬는 교우, 냉담자에 대하여 발표하는 박영숙 로사입니다.>

여성구역활동을 하며 냉담하는 교우를 어떻게 어머니의 마음으로 교회로 다시 돌아오게 할 수 있을까 깊이 고민을 했습니다. 냉담 교우들 중에는 세례를 받고도 적극적으로 인도를 안해 냉담하는 사례가 많았습니다. 저의 가정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딸과 아들이 친구따라 우연히 성당에 갔다가 초등학교 때 영세를 받고 딸이 성당에서 파이프오르 간으로 반주를 하고 싶다고 하니 신부님께서 부모님 중에 영세 받으신 분이있어야 한다고 하시니까 남편이 저를 설득하였습니다. 제가 그런 이유로는 종교활동을 안하겠다고 하니 남편이 먼저 아이를 위해 교리를 받고 영세를 받았습니다. 남편이 애들 데리고 성당을 가서 미사 끝나고 점심을 셋이서 매주 먹고 늦게 오는 것이었습니다. 누웠다 일어났다 혼자서 뒹굴며 하루를 지루하게 보내다 동네 교우들이 성당으로 이끌어 가족이 영세한지 2년뒤에 영세를 받았습니다. 그러던중 남편이 과로로 한 쪽 눈에 망막 변성이 와서 눈이 안보이자 우울해 하며 성당을 안다니기 시작했고 애들도 학년이 올라가며 냉담하기 시작해 늦깍이 신자인 저만 꾸준히 신앙생활을 하였습니다.

꽃이 피면 남편을 이끌어 본당의 날 행사에 초대해 음식도 사먹이고 분위기에 젖게 해 남편의 마음을 돌릴려 했으나 뺀질뺀질 다음 꽃피고 낙엽질 때를 기약하며 17년을 흘러 보내다 이번 강신부님이 오셔서 냉담교우들의 옆구리 찌르며 성당갈래?’ 하고 한마디만 하라하셔서 별 영혼 없이 이번 상당갈래?” 하고 옆구리를 찔렀더니 사순시기에 선뜻 그런다고 나서서 옆구리 찌른채도 깜짝 놀랐습니다. 그 후 한주도 거르지않고 성실하게 다니고 있어 이사람 마음속에도 주님에 대한 갈망이 있었구나 함을 느꼈습니다. 이렇듯 오랜 세월 냉담을 해도 어느 순간 누가 나를 붙잡아 주님앞에 데려가 주기를 기다리는 교우도 있겠구나 싶었고 모두가 주님을 믿고 따를 수 있게 노력해야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주부 30대 자매님 활동에 대하여 이아영 아녜스입니다.>

유아세례를 받아서 어렸을 때부터 엄마 손에 이끌려 성당에 나왔던게 기억이 납니다. 어렸을 때 기억은 부모님이 교중미사 볼 동안 놀이터에서 놀았던 기억입니다. 아마 성당이 완공이 안되어 가건물에서 미사를 보고 그 앞에 놀이터가 있었던거 같습니다. 초등학생이 되자 주일학교에 보냈는데 잘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대학생이 되고 성당에서 청년들 덕분에 청년시절을 성당과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청년부선배들이 나이차이가 기본적으로 6살 이상 나서 대학에서 배울 수 없는 걸 많이 배우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러다 결혼하고 정신없이 시간이 지났습니다. 결혼을 해서 누군가와 맞춰 간다는게 아직 힘들 때라 성당을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아이가 생기니 미사 참석도 힘들었습니다. 남편이 같이 가면 미사를 드릴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냉담하고 있는 상태에서 참석하기 힘들었습니다. 시댁 부모님들이 가까이 사셔서 일요일 주말 점심 먹으러 어디로 가자고하면 가게 되니 점점 11시 미사는 힘들어졌습니다.

그러다가 반모임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아는 사람들이 없었던 시절이라서 많이 의지가 되었습니다. 반모임에 나가도 신앙에 대한 갈증은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반모임 하시는 자매님 중에 집에서 찬양모임을 하신다는 얘기를 듣고 갓난아이와 함께 나가게 되었습니다. 모임을 이끄시는 자매님이 복음성가 곡으로 반주하시고 각자 원하는 사람들이 곡을 선정해서 같이 부르는데 정말 많은 치유를 받았습니다. 처음에는 눈물 나는 복음 성가만 선택하다가 주님을 찬양하는 기쁨의 성가를 선택하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제 품에 있던 딸 아이도 조용히 음악을 듣고 있어서 감사했던 기억이 납니다. 아이가 어려 미사 참석이 힘든 시기에 집에서 했던 찬양소모임이 신앙생활을 계속할 수 있게 해주었던 통로였습니다.


<가족캠프, 성지순례에 대하여 발표하는 박효자 율리아입니다.>

-먼저 성지순례에 대하여 두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첫 번째는 본당에서 새남터까지 도보성지순례로서 약 24KM를 도보로 순례한다는 그 계획 자체가 참으로 용기있는 결단이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노약자는 시도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보통사람인 저도 많은 사람이 가는데 별거 아닌 것 같은 가벼운 마음으로 출발하였으나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사순기간 중에 행하는 순례인지라 왠지 극기하고, 희생하고, 보속해야 할 것 같은 마음으로 힘들지만 열심히 걸었습니다.

목적지인 새남터에 도착했을 때의 그 뿌듯함 그곳에서 순교하신 많은 선조들께서 너희도 오늘 조금은 순교했다고 칭찬해주시는 것 같은 생각도 들면서 힘든 여정을 잘 마친 공동체의 모든 분들이 참 대견해 보였습니다. 10년도 더 지난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그런 어려운 시도가 개인을 감히 엄두도 못낼 일을 공동체가 함께한다는 목적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생각이듭니다. 평생 기억에 남는 순례였습니다. 굳이 나빴던 점을 덧붙인다면 서울시내를 통하는 도보이다보니 시끄럽기도 하고 포장된 길이다보니 발이 많이 아프기도 하고 조용히 묵상하며 순례할 수 있는 코스가 아닌 것이 아쉬웠습니다.

두 번째로는 본당에서 나바위까지 기차와 도보순례입니다. 기차를 타고 순례를 간다고 하니 왠지 학창시절 수학여행 갈 때의 추억이 떠오르는 것이 많이 설레이고 많이 기대되고 즐거웠습니다. 각 구역별로 표지판을 들고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영락없이 수학여행 가는 학생들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구역별로 칸칸이 좌석에 앉다 보니 잘 모르던 구역식구하고 친교도 이루어지고 맛있는 음식도 같이 나누면서 신앙에 대한 얘기도 나누게 되고 그런 자연스러운 기회가 하루종일이어지게 된 것 같습니다. 공동체 전체가 하나의 신앙으로 일치하다보니 다툴 일도 없고 하루종일 공통된 화제로 하루를 같이 지낼 수 있다는 것이 굉장히 좋았습니다.

조금 안좋았던 점은 대규모 인원이 순례를 하다보니 우리가 추구하는 바 목적지에 대한 인식이나 그 의미에 대해 성찰할 수 있는 기회가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또한 공동체 전체가 움직일 때의 시각적 일치감이 좀 부족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스카프 하나씩 착용은 했는데 그 보다는 상의 셔츠정도로 통일 했으면 더 일체감이 있어 보이고 멀리서도 더 쉽게 알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한가지 자매님들의 불만을 말씀드리자면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형제님들이 술을 너무 많이 드셔서 시끄럽기도 하고 정신없기도 하고 그게 나빴다고 얘기 하시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큰사고가 없었으니 그 정도는 애교가 아니었을까요?

<가족캠프에 대한 사례입니다.>

가족이 함께 캠프를 한다는 것은 굉장히 기쁘고 보람찬 일인데 더군다나 명일동 신자 가족들이 참여하는 캠프는 더 더욱 의미 있고 즐거운 행사였지요, 고영민과 선교세상이 함께 하여 분위기를 고조시켜주니 더욱 좋았고 마지막 밤에 캠프 화이어 하는 가족 모두 함께 참여할 수 있어서 절정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가장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조금 아쉬웠던 점은 노년층 어르신들이 할 일이 없었다는 점입니다. 물론 학생들이나 젊은 사람들이 노는 것만 보아도 즐거우셨겠지만 그분들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따로 있었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한가족 단위로 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있었다면 좀 더 알찬 캠프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암튼 엄청 재미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